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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크의 모스크바 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쯤. 우리를 제일 먼저 환영한 것은 경찰들의 검문이었다. 여권과 기차표, 거주등록증을 보여주었는데 이상이 없는지 잘 확인해보지도 않고 돈부터 요구한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타고 기차표를 하나 하나 보이며 한 도시에 3일 이상 체류한 적이 없다는 걸 설명했다. 경찰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냥 보내준다.
뻬쩨르부르크에서는 한국인 민박집보다 그냥 유스호스텔에 있기로 했다.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나무 민박은 한 사람당 30달러. 모스크바 역 근처의 유스호스텔은 한 사람 당 480루블이었다. 조금이라도 싼 곳에 있으려고 유스호스텔에 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가이드북에 나온 주소가 잘못되어 찾는 데 또 고생을 했다는 것. 우리는 '산호와진주'에서 출판된 러시아 여행 가이드북을 들고 갔는데 솔직히 말해서 도움이 많이 되지 못했다. 러시아 가이드북으로는 최초로 나온 책이니 만든 분들의 수고야 말할 필요도 없이 박수를 보낼 일이지만, 여행하며 느낀 것은 이 책은 배낭 여행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싼 숙소나 식당 정보가 별로 없고 대중교통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유스호스텔만 하더라도 유스호스텔이 위치한 곳의 주소가 아니라 간판이 걸린 곳의 주소를 적어놓아 헛걸음을 하게 만들었으니.
어쨌든 짐을 풀고 아침식사를 했다. 원래는 내일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내일 핀란드로 가려면 아침 일찍 나갈 것 같아서 오늘 먹겠다고 부탁을 했다. 아침을 주는 할머니가 아침식사를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아침이라야 차와 오렌지주스, 빵과 씨리얼뿐이었지만 할머니가 자꾸자꾸 더 갖다주시는 덕분에 배불리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씻고 짐을 대충 정리한 다음 서둘러 길을 나섰다. 뻬쩨르부르크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오늘 하루가 전부이다.
우선은 핀란드로 가는 기차표부터 끊어야 했다. 기차역 중에 '핀랸스키 바그잘', 그러니까 핀란드역이 있길래 그곳에서 출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헬싱키 행 기차는 없었다. 알고보니 핀란드 역은 이름만 핀란드 역일뿐, 국경까지만 가는 국내선이 출발하는 곳이었다. 헬싱키 행 기차가 출발하는 곳은 라도쥐스카야 기차역으로, 메트로 라도쥐스카야 역과 연결된다. 헬싱키 행 기차는 국제 열차라 그런지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게 비쌌다. 운행 시간을 따져 비교해보면 지금까지 탔던 기차 요금의 거의 두 배였다. 처음에 계산기에 찍어주는 1886루블이라는 가격이 두 장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끊으려 했으니까. 헬싱키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는 얘기를 모스크바에서 들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할 수 없이 환전을 다시 하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우리나라 종로 거리와 비슷하다는 네프스키 대로를 구경했다. 많은 사람들로 붐벼 연말 분위기가 났다. 종로에도 지금쯤이면 사람들로 가득차 있겠지. 2004년도 꼭 열흘 남았다. 모스크바에서 못 본 발레 공연을 여기서 시도해보기로 했다. 네프스키 대로에는 뻬쩨르부르크의 모든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이나 발레, 무용, 음악회 등의 표를 파는 티켓 오피스가 있다. 다행히도 영어가 통해서 물어보니 오늘은 발레 공연이 있는 곳이 없단다. 실망하고 돌아나와 가스찌느이 드보르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마린스키 극장의 전용 매표소가 있다. 마린스키 극장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함께 러시아 공연 예술의 양대 중심 중 하나이다. 표를 구하기가 힘들다는데, 그것도 당일 표를 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그냥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운이 따랐는지 오늘 저녁에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발레 공연이 있었다. 긴 줄을 기다린 보람이 있어 표도 구할 수 있었다. 가장 싼 표가 한 장에 320루블로,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보는 대신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힌다는 에르미따쥐 박물관은 포기해야 했다. 원래는 박물관을 관람한 뒤 공연을 보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헬싱키 행 기차표와 마린스키 발레 공연 티켓을 구하는 데 거의 하루를 써버린 뒤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야 유럽에 가면 얼마든지 볼 기회가 많을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네프스키 대로의 한 블린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블린은 러시아식 팬케이크이다. 팬케이크보다 얇은 밀전병에 아채, 치즈, 치킨 등을 넣어 싸먹기도 하고 그냥 버터나 쨈을 발라 먹기도 한다. 버섯과 치즈가 들어간 블린을 시켜 홍차와 함께 먹었다. 천천히 저녁을 먹고 마린스키 극장으로 향했다.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운좋게 발레 공연을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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